고추장은 늘 강한 맛의 상징이었다.
맵고, 달고, 짜서 밥을 비비면 그 자체로 중심이 되는 양념.
그래서 고추장은 ‘조연’이 아니라 언제나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황태가 들어간 고추장은 이 공식을 조금 비껴간다.
맛이 세지 않다.
그렇다고 밋밋하지도 않다.
오히려 먹을수록 차분해지는 쪽에 가깝다.
처음 황태고추장을 접했을 때 느낀 인상은
“고추장이 왜 이렇게 담백하지?”였다.
전통 고추장의 틀 안에서 다른 길을 택하다
전통 고추장은 구조가 명확하다.
콩에서 나온 구수함,
찹쌀에서 만들어진 단맛,
고춧가루의 매운 기운.
이 세 가지가 숙성을 거치며 한 덩어리의 맛으로 완성된다.
문제는 현대에 들어오면서
이 균형이 많이 단순해졌다는 점이다.
빠른 생산을 위해 단맛은 물엿으로 대체되고,
발효의 깊이는 짧아졌다.
그래서 요즘 고추장은 맛이 빠르지만,
금방 질린다.
황태고추장은 이 지점에서 다른 선택을 한다.
단맛을 더하지 않고,
감칠맛의 출처를 바꾼다.
황태가 만들어내는 감칠맛의 성격
황태는 독특한 재료다.
기름진 생선도 아니고,
향이 강한 해산물도 아니다.
오히려
오랜 시간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단백질이 천천히 분해된 결과물이다.
그래서 황태에서 나오는 맛은
튀지 않는다.
앞으로 나서지 않는다.
뒤에서 전체 맛을 정리해 주는 역할에 가깝다.
이 성질이 고추장과 만나면
단맛이 줄어들어도
맛이 비지 않는다.
황태고추장은 ‘장’에 더 가깝다
황태고추장을 먹다 보면
이건 반찬이 아니라 여전히 ‘장’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볶음 고추장처럼 기름지지 않고,
젓갈처럼 짜지도 않다.
밥 위에 얹어 먹어도
고추장이 밥을 덮어버리지 않는다.
재료 맛이 남아 있고,
그 사이를 황태고추장이 이어준다.
그래서 이 고추장은
비빔밥에 특히 잘 어울린다.
나물 무침에도 과하지 않다.
쌈장 대신 써도 입안이 무겁지 않다.
먹을수록 느껴지는 차이
황태고추장의 진가는
한두 번 먹을 때보다
며칠 지나 다시 먹을 때 더 분명해진다.
단 고추장은
처음엔 맛있고, 금방 질린다.
황태고추장은
처음엔 조용하고,
나중에 기억에 남는다.
밥을 급하게 비우지 않게 만들고,
숟가락 속도가 느려진다.
이건 맛이 약해서가 아니라
맛이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황태고추장이 잘 맞는 사람들
이 고추장은
강한 양념을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집밥 위주로 먹는 사람에게 잘 맞는다.
단 고추장이 부담스러운 분
나물이나 채소 반찬을 자주 먹는 분
아이와 함께 먹을 고추장을 찾는 집
자극적인 맛에 쉽게 질리는 분
이런 경우라면
황태고추장은 꽤 좋은 선택이 된다.
모든 황태고추장이 같은 것은 아니다
‘황태’라는 이름만 보고 고르면
기대와 다른 경우도 있다.
황태가 얼마나 들어갔는지,
볶음인지 숙성형인지,
단맛을 무엇으로 보완했는지
이 세 가지는 꼭 확인해야 한다.
황태가 앞에 나서기보다
고추장 맛을 정리해 주는 제품이
오래 먹기에는 훨씬 낫다.
고추장은 여전히 진화 중이다
황태고추장은
전통을 버린 음식이 아니다.
오히려 전통 고추장의 틀 안에서
새로운 재료를 받아들인 형태다.
자극을 더하는 대신
균형을 선택했고,
빠른 맛 대신
오래 먹는 맛을 택했다.
그래서 이 고추장은
눈에 띄기보다
식탁에 오래 남는다.
마무리하며
고추장은 여전히 집밥의 중심이다.
다만 그 방식이 조금 달라지고 있을 뿐이다.
황태고추장은
고추장이 꼭 강해야만 맛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조용히 보여준다.
밥을 비울수록
입안이 편안하다면,
그건 좋은 고추장이다.